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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헌법 제1조1항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행정부와 국회 간의 갈등에서 촉발된 논의이다. 제1조1항의 문구는 매우 짧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것이 전부다. 1항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2항의 문구도 볼 필요가 있는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이 조항도 너무 당연해 보인다. 왜 이 당연한 조항이 문제가 되었을까? 문제는 이 조항을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民主, democracy)는 문자 그대로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인이라는 의미이고, 공화국(共和國, republic)이란 국가권력을 모든 구성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이란 국민이 국가권력을 공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성립되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개인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독재정치(獨裁, autocracy)나 몇 사람의 엘리트가 국가권력을 나눠 갖는 과두정치(寡頭, oligarchy)와는 다르다. 물론 민주공화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틀을 갖고 운영되느냐는 각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기질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삼권분립이 민주공화국을 운영하는 하나의 보편적 체제라고는 하지만 행정부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질 것이냐, 입법부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질 것이냐는 국가마다의 형편과 시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지 않겠는가. 삼권분립도 실은 미국에서 처음 도입한 제도이기 때문에 그 역사가 200년이 조금 넘는다 할 수 있다. 물론 삼권분립 이론은 훨씬 전에 만들어졌긴 하지만.
지난 5월 29일, 대통령령 등 정부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ㆍ변경 요구권한을 명문화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되었다. 법안 취지는 정부시행령이 법률 취지에 맞지 않을 경우 국회가 장관에게 수정ㆍ변경을 요구하고, 이에 장관은 해당 요구를 시행해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6월 25일 이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이 행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효율성을 저해함으로서 결국 국민을 위한 개정이라기보다는 국회의원 자신을 위한 개정이라 ‘배신의 정치’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집권여당 원내대표는 이번 개정을 헌법 제1조1항에 충실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맞서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 개정안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과도한 시행령이 국회의 입법권한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반대로 개정안이 행정부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꼽았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사색을 통하여 통찰하고 사심이 없는 철학자가 국가권력을 잡고 정치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플라톤이 보기에 철인정치란 불가능하였다. 왜냐하면, 진정한 철학자라면 온 우주와 사회의 이치를 공부하고 터득하는데 관심이 있지 세속의 정치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철인정치가 불가능하면 그 다음으로 추천할 정치체제는 무엇일까? 후대학자들에 의하면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철인정치 다음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독재정치와 과두정치보다는 훨씬 부작용이 적고 우리사회를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통치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삼봉 정도전도 왕도정치를 인정은 했지만 왕이 한 가계에서 세습되면 왕의 혼명(昏明)이 교차할 수 있기 때문에 유교교육과 정치경험을 통하여 자질을 검증받은 정승들이 통치를 하여야 한다는 소위, 재상정치(宰相政治)를 주장하였다. 재상들이 민주까지는 아니지만 민본의 정신으로 국정을 돌봐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리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권력을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위임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자칫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과도하게’라는 현실적 범위가 어디까지 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고,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체계에 대한 논의의 중심에는 개인의 이익과 편리보다는 국민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 제1조1항이 의미하는 정신이고 이 조항이 헌법 제1조1항으로 자리 잡은 이유일 것이다.
편집부 기자 / 2015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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